Space Oddity
가로등 그늘 아래 개똥이 놓여 있다. 살짝 피해 지나치려는데 개똥이 꿈틀한다. 굼뜬 동작이지만 왠지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다.
대접 가득 카레 국밥
높은 습도 탓에 찌는 듯이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다. 수목원 산책 중에 어디선가 삐이익 삐이익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린다.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주변을 살피니 버드나무 가지를 간신히 붙잡은 어린 새 한 마리가 뜨거운 햇볕을 그대로 맞고 있다. 툭 튀어나온 두 눈은 꿈뻑꿈뻑 작은 부리는 반쯤 벌린 채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다.
포테사라
초여름의 수목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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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갖 잡새가 날아드는 날
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이러저러한 핑계로 미뤄왔던 텃밭에 다녀왔다. 며칠 뒤 큰 비 소식이 있어 그전에 풀을 베고 마늘쫑을 거두는 게 좋겠다 싶었다. 무릎 높이로 자란 마늘 사이로 풀이 한 뼘 길이로 올라와 있었다. 짧은 부추낫을 들고 왔지만 흙은 부드럽고 풀도 아직은 여려서 한 손으로도 쉽게 뽑혔다. 손에 쥐
오이피클
내 청춘의 첫 페이지
악산(岳山)이라는 명성답게 거친 바위와 수려한 골짜기를 자랑하는 관악산이지만, 나에게는 그저 산이 아니라, 매일 아침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던 내 청춘의 첫 페이지로 기억된다. 그 산자락 아래 자리한 서울대학교 교내의 한 벤처기업이 나의 첫 직장이었다. 당시의 출근길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여정이었다. 마을버스와 전철, 교내를 순환하는 버스로 갈아탄 뒤에야 비로소
수풀 속에서, 랄라-라
노란 백열구 스탠드 아래로 큰 그림자가 사각사각 움직인다. 이부자리에 누운 한 사내가 옆 자리의 아이들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스탠드를 최대한 바닥으로 구부려놓고 뭔가를 쓰고 있다. 삼십대 초반의 이 남자는 어디선가 빌려온 가곡집을 돌려주기 전에 맘에 드는 몇 곡의 악보를 음악공책에 옮겨적고 있는 중이다. 현재명의 <니나>를 흥얼거리며 악보를
Beatuful Boy
존 레논이 그랬다. Life is what happens to you while you’re busy making other plans 라고. 단순히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. 미래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삶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. 그러니 계획이 틀어졌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없다고 다정하게 등을 토닥이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. 언젠가 너는 자라서 세상으로 나가겠지. 먼
백악에서 명륜까지 서울의 봄을 걷다
흔히 봄이 한 해의 시작이라고들 말한다. 얼었던 땅이 풀리고 사방에 돋는 푸른 빛을 보며 새로운 다짐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. 내 생각에 봄은 지난한 시절을 견뎌낸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닐까 한다. 지난 주 백악산에서 명륜동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길을 걸었다. 환하게 맞아주는 목련이 지난 봄부터 꽃눈을 키워왔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역사도 혹독한
향기로 기억되는 봄
“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서 참 좋겠어”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으신지. 나는 한동안 ‘편리한 기억력’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었다. 무슨 큰 죄를 지어 경찰서나 청문회에 끌려나가 일방적으로 추궁당한 것은 아니고, 여자친구가 불시에 던진 질문 - 그 때 기억나지? - 에 순발력있게 대응을 못해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정적에 휩싸이는 상황이 종종